
절을 사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왜 절이라고 부르고, 또는 사찰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하지 않았는지요? 뭐 꼭 절과 사찰에 대한 유래를 몰라도 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궁금한 것은 아는 것이 좋습니다. 불교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으로 알아두면 유익한 내용입니다.
사찰의 유래
불교가 시작되면서 인도에서는 ‘상가람마’ 또는 ‘비하라’로 일컬어졌던 승려의 집단 수행처를 중국에서는 ‘사’, ‘사원’, ‘사찰’등으로 불렀습니다. 이것은 ‘사’라는 호칭이 불교 전파 당시의 중국 관청 이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때에 인도승들이 불교를 전하기 위해 중국에서 머물렀을 때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접대하고 기거하는 일을 관장했던 ‘홍로시’라는 관청에 묵게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중국에서는 승려들이 머무르는 곳을 ‘무슨무슨 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된 것은 후한의 명제 10년인 서기 67년입니다. 당시 중인도의 승려인 가섭마와 축법란 등이 불상과 불경을 백마에 싣고 낙양으로 들어오자, 명제는 이를 크게 환영하고 낙양성의 서옹문 밖에 정사를 지어 ‘백마사’를 지어 그들을 머무르게 합니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사찰이고, 그때부터 ‘사’라는 호칭은 완전히 스님들이 거처하면서 수행을 하는 장소로 정착되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사찰을 지칭할 때 ‘사원’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사원이라고 할 때의 ‘원’은 주위에 회랑이나 담장을 두른 집을 의미합니다. 사찰의 범어인 상가람마는 승려들이 모였음을 뜻하는 '상가'와 거주 처를 뜻하는 '아라마'가 복합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사찰을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사찰의 주위에 회랑 또는 담장을 두르게 되자 동산 또는 울타리를 뜻하는 ‘원’을 담장을 두른 집을 의미하는 ‘원’으로 바꾸어 쓰게 됩니다. 따라서 당나라 때에는 ‘사’와 ‘원’은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예를 산동 반도의 적산촌에 있었던 신라인의 사찰 ‘법화원’에서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선림원’, ‘문수원’ 등의 사찰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이후에는 ‘사’를 ‘원’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즉, ‘사’는 사찰 전체를 가리키는 어휘로서, ‘원’은 사찰 속에 있는 특정한 기능의 별사를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산 속에 있는 작은 사찰이나 토굴을 ‘암’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이러한 이유로 같은 어휘를 그대로 받아 들여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절의 유래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5년(375)에 세운 '이불란사'와 '초문사'입니다. 신라의 경우에는 불교의 전파가 신라 왕실이 아닌 민간에 먼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민간에게 포교활동을 하던 아도화상이 숨어 살았던 '모례의 초가집'이 신라의 첫번째 절로 들 수 있으나, 공식적인 신라의 최초의 절은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던 천경림의 홍륜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찰을 ‘절’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라에 처음 불교가 전해질 때 아도화상이 ‘모례의 집’에 숨어 살았는데, 그 ‘모례의 집’이 우리말로는 ‘털례의 집’이었고, 그 ‘털’이 ‘덜’로 바뀌게 되었다가, 이후 ‘절’로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찰을 '절'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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